31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2.6% 하락한 5,118.17로 마감했다. 코스닥 역시 3.3% 급락한 1,071.48을 기록하며 시장 전반에 매도세가 짙게 깔렸다. 원·달러 환율은 1,516.2원까지 치솟으며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강하게 부추기는 형국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대규모 매도 우위를 보이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나스닥이 20,794.64(-0.7%), S&P500이 6,343.72(-0.4%)로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과 대조적으로 국내 증시의 낙폭이 유독 깊었던 이유는 내부적인 정책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지표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가의 시선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국회로 쏠리고 있다.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주요 경제 법안과 추가 재정 투입 여부가 결정될 국회 본회의 일정에 시장의 명운이 걸려 있다. 투자자들은 기업 실적 발표보다 여의도 정치권의 입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증권가에서는 국회의 입법 지연이나 예산안 처리 지연을 명백한 악재로 해석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세제 개편안이나 첨단산업 보조금 지급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정책 동력이 상실된다는 논리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며, 법안 통과가 늦어질수록 기업들의 투자 시계는 멈추게 된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지연될 경우,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과거 데이터를 보더라도 주요 세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될 때마다 코스피의 변동성 지수는 급등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회 예산안 심의 지연, 정말 증시에 악재일까?
하지만 현재의 거시경제 환경과 지표를 꼼꼼히 뜯어보면 이 같은 통설에는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다. 오히려 국회의 신중하고 깐깐한 예산 심의가 거시경제의 안정을 도모하는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핵심은 환율과 인플레이션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훌쩍 돌파한 고환율 국면에서, 정치적 논리에 떠밀린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이나 재정 지출 확대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시중 유동성 증가로 인해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재정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시점에서의 무리한 재정 투입은 국가 채무 부담을 급격히 늘리고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유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회가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예산 증액에 제동을 거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규모 국채 발행을 동반하는 선심성 예산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폭 삭감되거나 보류될 경우, 채권 시장의 수급 부담이 완화되어 시중 금리 급등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무분별한 선심성 예산이 증액될 경우 한정된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어 국가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즉, 국회 예산 심의 지연이 단기적으로는 정책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화 약세 방어와 금리 안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