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 역사적 감수성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평판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발생했다. 2026년 5월 18일,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1위 기업인 스타벅스 코리아(SCK컴퍼니)가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맞춰 대용량 텀블러 판촉 행사를 진행하며 사용한 홍보 문구가 거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스타벅스 측은 즉각 사과하고 행사를 중단했으나, 단순한 실수를 넘어 기업 내부의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18에 '탱크'와 '책상에 탁'…스타벅스 홍보물 논란의 전말은?
스타벅스 코리아는 18일 오전 자사 애플리케이션과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대용량 텀블러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이벤트를 공지했다. 문제는 해당 스타벅스 홍보물에 사용된 핵심 키워드와 문구의 조합이었다. 이벤트 명칭은 텀블러의 거대한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탱크 데이(Tank Day)'로 명명되었고, 제품을 책상에 내려놓는 모습을 묘사하며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함께 배치되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두 사건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기표로 작용했다. 첫째, 이벤트가 시작된 5월 18일은 1980년 신군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둘째,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이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내놓았던 변명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국가 폭력 사건을 연상시키는 두 단어가 하필 5·18 당일에 하나의 마케팅 이미지에 결합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자, 스타벅스 코리아는 사태 파악 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스타벅스의 공식 사과와 행사 중단 조치는 논란이 확산된 지 수 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사측은 공지문을 통해 "판매 촉진 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문구가 사용됐음을 발견했다"며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문구가 기획되고 승인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해명은 내놓지 않아 비판의 불씨를 남겼다.
단순 실수인가, 시스템 부재인가…스타벅스 홍보팀의 내부 검수 과정은?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실무자의 단순한 무지나 실수를 넘어,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의 콘텐츠 생산 및 검수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매주, 혹은 매일 새로운 프로모션과 신제품을 쏟아내야 하는 식음료 업계의 특성상 스타벅스 홍보팀과 마케팅 부서는 극심한 속도전에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시선을 끄는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카피라이팅에 매몰된 나머지, 해당 문구가 지닌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필터링하는 '레드팀(Red Team, 조직의 취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집단)'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마케팅 홍보물은 기획, 카피 작성, 디자인, 팀장급 1차 검수, 임원급 최종 승인 등 최소 3~4단계의 결재 라인을 거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탱크'와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5월 18일이라는 특정 날짜에 배포되도록 승인된 것은 기업 내부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및 리스크 관리 매뉴얼에 역사적 감수성 항목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한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는 "대용량 텀블러를 '탱크'에 비유하는 것은 일상적인 은유일 수 있고, 물건을 내려놓는 의성어로 '탁'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가 '5월 18일'이라는 맥락(Context) 위에 놓일 때 어떤 파괴력을 가질지 예측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라며, "데이터와 효율성만 강조하는 최근의 퍼포먼스 마케팅 환경이 낳은 전형적인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숨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
이번 사태는 단순한 소비자 불만을 넘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식적인 항의로 이어졌다. 사안의 중대성과 역사적 민감성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스타벅스의 마케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스타벅스의 인면수심 마케팅에 경악한다"며, "광주 시민과 국민의 눈에 이것이 어떻게 비쳤을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