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전월세 살아도 괜찮다?"…내집 마련 부모 세대보다 14년 늦어졌다, 이유는?
"여보, 현금 8억 있어?"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견본주택에서 실수요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짙은 관망세 속에서도 예비 청약자들과 실수요자들의 물밑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끝없는 숙제이자 가장 확실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급변하는 거시경제 지표와 겹겹이 쌓인 대출 규제 속에서 주택 소유의 의미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에서는 1인 가구의 급증과 비혼 트렌드의 확산으로 인해 주택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거주'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이른바 '렌트족'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통계청 발표(2025년)에 따르면 서울 중년 5명 중 1명이 미혼일 정도로 가구 구조가 급변했다. 신혼집 마련이나 자녀 교육비 부담이 줄어든 만큼, 무리해서 집을 사기보다는 전월세를 유지하며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산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데이터는 전혀 다른 현실을 지목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분석 자료(2026년 보도)에 따르면, 최근 4년 이내 처음 집을 산 가구주 연령은 2024년 기준 평균 46.4세로 집계됐다. 1990년 이전 첫 부동산 취득 연령이 평균 29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모 세대보다 약 14년 이상 늦어진 수치다. 이는 청년 세대가 내 집 마련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 높은 집값과 취업 지연으로 인해 시장 진입 시기가 구조적으로 밀려났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나이만 늦어진 것이 아니다. 부모 세대가 집을 사던 1990년대 초반은 경제 성장률이 높고 예금 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해, 저축만으로도 주택 구입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시대였다. 반면 2026년 현재의 3040 세대는 저성장 국면 속에서 실질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청년층의 취업 시기가 평균 30대 초반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학자금 대출 상환과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하다 보면 종잣돈을 모으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자산 형성 시점이 늦어질수록 '스노우볼링(눈덩이 굴리기)' 효과에서 소외되어 미래에 기성세대의 자산 규모를 따라잡기 불가능해진다. 평생 전월세에 머무는 것이 선택이 아닌 강제된 결과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실수요자들을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달라지는 내집 마련 방정식, 왜 여전히 소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여전히 빚을 내서라도 실물 자산을 소유해야 하는가. 해답은 극단적으로 요동치는 거시경제 지표와 화폐 가치 하락에 있다. 2026년 5월 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47.4원까지 치솟았고 코스피 지수는 7,490.05(+1.4%)를 기록하며 자산 인플레이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비트코인 가격은 8만 달러(약 1억 1,674만 원)를 돌파했고, 금 가격은 온스당 4,761.10달러에 달한다. 나스닥 지수 역시 25,971.47(+0.5%)을 기록하며 글로벌 유동성 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실물 화폐의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부동산은 가장 안정적이고 강력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작동한다. 월급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자산 가격 상승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학습 효과가 시장 참여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이다.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는 과거 갭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을 가능하게 했으나, 최근에는 전세 사기 여파와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주거비용이 매월 소멸하는 월세로 전환될수록 무주택자의 자산 축적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매월 은행에 이자를 내더라도 장기적으로 자산 가치 상승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내 집'을 소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주택 시장의 양극화 프레이밍은 소유의 당위성을 더욱 강화한다. 강남과 지방, 서울과 수도권 외곽 간의 가격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은 하락장에서도 가격 방어력이 뛰어난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고 있다. 과거처럼 전국 모든 아파트가 일제히 오르는 대세 상승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핵심 입지의 주택은 자산 가치 보존을 위한 필수재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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