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은 한국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의 심장부로 인식된다. 대학과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며 국가의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개발을 이끄는 핵심 기관이다. 통상적으로 재단의 역할은 장기적 관점에서 묵묵히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 통념에 균열을 내는 데이터가 포착된다. 한국연구재단의 예산 배분과 과제 선정 기준에서 근본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닌, 국가 R&D 전략의 무게중심이 '기초'에서 '응용'으로, '장기'에서 '단기 상용화'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Why 한국연구재단 R&D 예산은 '운명'처럼 조정되었나?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산 배분 내역에 있다. 2026년도 한국연구재단 총 예산은 약 8조 9천억 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내부 항목을 분석하면 특정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순수 기초과학 연구 지원 비중은 전체 예산의 38%로, 5년 전 45% 대비 7%p 감소했다. 이 감소분은 고스란히 '국가전략기술' 분야로 재배치되었다.
특히 인공지능(AI), 차세대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3대 초격차 기술 분야의 신규 과제 예산은 전년 대비 평균 22% 급증했다. 이는 정부가 단기 내에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기술에 R&D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주요 언론에서도 국가 기술 패권 경쟁 심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분석한다.
'선택과 집중' 아래 가려진 기초과학의 위기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명분은 확실하다.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 전통적인 기초과학 분야의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 예산은 사실상 3년째 동결 상태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예산 삭감이다.
이러한 기조는 대학 연구 현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젊은 과학자들이 AI나 반도체 관련 연구로 전향하지 않으면 연구비 수주가 어려워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10년, 20년 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는 창의적 연구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