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000 시대가 열렸지만 정부 곳간 앞에는 매서운 긴축의 바람이 불고 있다. 15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2.1% 상승한 6,091.39로 마감하고, 코스닥은 1,152.43(2.7%)으로 강세를 보인 가운데 정부는 전례 없는 고강도 재정 다이어트를 공식화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15일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재량 지출 15%, 의무 지출 10%를 삭감해 총 50조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증시는 나스닥이 23,639.08(2.0%), S&P500이 6,967.38(1.2%)로 동반 상승하며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 역시 74,010달러(약 1억 9,344만 원) 선에서 거래되며 자산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다.
하지만 국내 실물 경제가 마주한 현실은 차갑다. 원·달러 환율은 1,472.5원을 기록 중이며, 유로화(1,737.0원)와 엔화(100엔당 926.7원) 대비 원화 가치도 극도로 불안정하다. 여기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92.45달러(1.7% 상승)까지 치솟으면서 수입 물가 압력이 한계치에 달했다.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온스당 4,818.60달러(-0.6%)로 소폭 하락했지만,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언제든 인플레이션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 대신, 기존 지출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택한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재원 마련 방안, 왜 50조원 지출 구조조정인가?
박 장관이 제시한 50조 원은 단순한 예산 절감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온전히 전 과정을 주관하는 첫 예산안의 뼈대이자 핵심 동력이다. 정부는 이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 지방 주도 성장, 양극화 해소 등 굵직한 국정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재명 재원 마련의 구체적인 해법이 이번 발표를 통해 윤곽을 드러냈다. 대규모 세수 확보가 불투명한 현 경제 상황에서, 전면적인 증세보다는 기존 예산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방식이 최우선 카드로 채택됐다.
박 장관은
"내년도 예산이 이재명 정부 들어서 온전히 전 과정을 주관하는 예산이 된다"며 "성장 패러다임의 대전환,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 지방 주도 성장, 양극화 해소 등 국정 목표의 실현을 위해 재원을 우선으로 쓰겠다"
고 강조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2차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미 처리된 1차 추경의 신속한 집행을 통해 경기 진작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예측 불가능한 대외 변수에 섣불리 대응하기보다는, 내달 발표될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타깃형 민생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이 엿보인다.
재량지출 15%·의무지출 10% 삭감… 실현 가능한 재원 마련 방안일까?
재원 마련 뜻은 단순히 금고에 돈을 쌓는 것을 넘어, 국가 재정의 우선순위를 백지상태에서 재조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정부 부처의 예산은 크게 재량 지출과 의무 지출로 나뉜다. 재량 지출은 정부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예산이다. 반면 의무 지출은 법령에 따라 지급 대상과 규모가 명시되어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기초연금, 건강보험 국고지원, 지방교부세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정부들이 추진했던 지출 구조조정은 통상 각 부처의 재량 지출을 10% 안팎에서 일괄 삭감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 제시된 재량 지출 15% 삭감은 사실상 공공 부문의 신규 사업 동결과 경상 경비의 극단적인 축소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박 장관은 그동안 정치적 부담 때문에 성역으로 여겨졌던 의무 지출까지 10% 삭감하겠다는 파격적인 목표를 던졌다.
기획재정부(현 기획예산처) 내부 자료와 국회 예산정책처 통계(2025년 기준)를 종합하면 전체 예산 중 의무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3%를 넘어섰다. 고령화와 저출산 대응으로 복지 예산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의무 지출 삭감은 법률 개정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의무 지출 10% 삭감은 필연적으로 기존 복지 수급권자의 혜택 축소나 수급 기준 강화를 동반한다"며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과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50조 원이라는 숫자는 국민에게 강력한 긴축의 시그널을 주는 상징성이 크지만,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 각 부처의 이기주의와 이익단체의 거센 반발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최대 난관이다.
기본소득제와 민생 지원금 재원 마련, 예산 재편성으로 감당할 수 있나?
이재명 정부의 간판 정책인 기본소득제 재원 마련과 각종 민생 지원금 재원 마련은 이번 지출 구조조정의 성패와 직결되어 있다. 새로운 보편적 복지 제도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려면 막대한 신규 재원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보편적 기본소득은 막대한 예산이 매년 고정적으로 소요되는 만큼, 일회성 세수 초과나 단기 차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지역 화폐 결합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자금줄이 마르면 정책 자체가 표류할 위험이 크다.
일각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이나 법인세율 인상 등 대대적인 세제 개편을 통한 세수 확충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정부는 항구적인 세제 개편 이전에 지출 효율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행(2026년 1분기 기준) 데이터에 따르면 가계부채 비율과 한계기업 부실 위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무리한 증세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은 민간의 투자 심리와 소비 여력을 급격히 얼어붙게 만들 위험이 크다.
결국 50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은 신규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유일한 돌파구다. 정부는 부처 간 중복 투자되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고,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한 선심성 일자리 사업을 과감히 폐지해 여유 자금을 창출할 계획이다. 이렇게 확보된 자금은 양극화 해소와 취약계층 보호라는 민생 지원금 본연의 목적에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2026년 정부 예산안 지출 구조조정 목표 및 재원 활용 계획 (추정치)
| 지출 구분 |
조정 목표치 |
예상 확보액 (추정) |
최우선 활용 분야 |
| 재량 지출 |
15% 삭감 |
약 20조 원 |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에너지 전환 투자 |
| 의무 지출 |
10% 삭감 |
약 30조 원 |
민생 지원금 지급, 양극화 해소, 지방 주도 성장 |
| 구조조정 총계 |
- |
약 50조 원 |
핵심 국정과제 동력 확보 |
중동발 고유가 충격과 추경 재원 마련, 시장에 미칠 파장은?
정치권과 시장에서 연일 재원마련 재원마련이라는 구호가 반복되는 이면에는 짙은 대외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주변국 간의 지정학적 갈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WTI유가 92달러를 돌파한 것은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다. 석유화학, 항공, 해운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원가 부담을 임계점까지 끌어올리며 산업계 전반의 영업이익률을 갉아먹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에는 직접적인 비용 상승 청구서로 돌아온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수 진작을 위한 대규모 2차 추경 재원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박 장관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대해 섣부른 대응을 경계했다. 무분별한 추경 편성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국채 발행 물량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채권 시장의 금리를 밀어 올리고, 결과적으로 가계 대출자와 한계 기업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치명적인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정부가 추경 대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 마련을 공식화한 점을 시장 안정화의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채권 시장 입장에서는 대규모 국채 발행이라는 수급 폭탄의 우려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이 2%대 동반 급등세를 연출한 배경에는 글로벌 기술주 호황뿐만 아니라, 정부의 확고한 재정 건전성 유지 의지에 대한 시장의 긍정적 화답이 깔려 있다.
12개월 전망: 50조 원의 청사진, 국회 문턱 넘을 수 있을까
앞으로 12개월, 정부가 내놓은 50조 원 재원 마련 계획은 혹독한 검증의 무대에 오른다. 당장 내달 구체화될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규모와 대상 선정 기준에서 정부의 예산 효율화 의지가 첫 번째 시험을 치르게 된다.
진짜 승부는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펼쳐진다. 2027년도 예산안 심사를 둘러싸고 여야 간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이 예고되어 있다. 야당은 의무 지출 10% 삭감이 결국 서민과 취약계층의 복지망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정부는 AI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산업 재편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낡고 비효율적인 지출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 국가 생존의 문제라는 논리로 맞설 것이다.
금융 시장과 경제 전문가들은 50조 원이라는 절대적인 수치의 달성 여부보다, 삭감된 예산이 실제로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분야에 얼마나 정밀하게 재배치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기적인 재정 건전성 지표 관리에만 급급해 미래 성장 동력의 싹을 자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경제 체질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교한 핀셋 구조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출처 및 참고자료
- 기획예산처 — 2026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 및 지출 구조조정 계획 (2026)
- SBS 뉴스 — 박홍근 "지출 구조조정으로 50조 재원 마련" (2026)
- 연합뉴스 — 정부 고강도 지출구조조정 예고, 기획예산처 장관 인터뷰 (2026)
- 한국은행 — 경제통계시스템(ECOS) 2026년 1분기 주요 거시경제 지표 및 가계부채 동향 (2026)
- 국회 예산정책처 — 2025-2026 국가재정 운용 계획 및 의무 지출 추계 보고서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