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산 시장이 지정학적 리스크의 급격한 변동에 반응하며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동시다발적 일시 휴전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가격이 엇갈리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25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8.43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3.5% 급락했다. 반면, 국내 증시는 환호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 상승한 5,553.92로 마감하며 강력한 랠리를 펼쳤고, 코스닥 역시 2.2% 오른 1,121.44를 기록했다. 한국경제 등 주요 매체들은 일제히 지정학적 긴장 완화가 국내 수출 기업들의 이익 개선에 미칠 긍정적 파급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휴전, 왜 지금 시장을 흔드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시작된 이른바 '트럼프 휴전' 구상이 올해 글로벌 경제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동유럽과 중동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일시 휴전을 강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금융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동유럽과 중동의 교전이 일시적으로라도 중단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의 고질적인 병목 현상이 해소되며 올해 글로벌 GDP 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유가 하락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 압력을 낮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휴전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항공 및 운송 섹터의 연간 EPS(주당순이익) 전망치는 평균 12% 이상 상향 조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국의 S&P500 지수는 6,556.37로 0.4% 하락했고, 나스닥 지수도 21,761.89로 0.8% 내렸다.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가 전체 시장의 랠리로 직결되기보다는, 그간 시장을 이끌어온 방산 및 에너지 섹터의 대규모 차익 실현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과 엑슨모빌 등 거시적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 대표 기업들의 주가가 단기 조정을 받으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유가 향방은?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원자재 시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마자 국제 유가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WTI 88.43달러 선 붕괴는 글로벌 원유 수요 부진 우려에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 기대감이 더해진 결과다.
과거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상 당시에도 타결 직전 원자재 가격이 급격한 변동성을 보인 바 있다. 전시 체제에서 비축되었던 막대한 물자가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선반영된 것이다. 현재 시장도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유럽 내 수출 제재가 일부 완화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들은 이미 겨울철 에너지 비축량 조절에 들어갔으며, 이는 단기적인 유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 하락은 국내 산업계에 명암을 뚜렷하게 엇갈리게 한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주와 한국전력 등 에너지 수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기업들은 비용 절감 효과로 강력한 실적 개선 모멘텀을 확보했다. 반면, S-Oil 등 정유 섹터는 대규모 재고 평가손실 우려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