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둔 서울 재건축 단지, 왜 '건설사 출신'을 모실까?

정상열

부동산 담당 편집기자

·4·618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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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의 정책 변동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지자체장의 성향에 따라 정비사업의 인허가 속도와 기부채납 비율 등 핵심 조건이 뒤바뀔 수 있는 시기다. 이 가운데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는 비전문가인 조합원들이 주도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대형 시공사 출신의 은퇴 임원이나 실무진을 조합의 핵심 인력으로 영입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 주요 사업장 곳곳에서 이른바 '건설사 출신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는 추세다.

서울 재건축 단지, 왜 지금 시공사 출신을 찾나?

부동산 정비사업 시장의 일반적인 인식은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재건축 추진 동력이 크게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유가 상승과 원자재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시공사들은 조합에 3.3㎡당 1,000만 원 이상의 공사비를 요구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사업장이 시공사 선정을 미루거나 사업을 잠정 중단하는 '관망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트렌드가 감지된다. 사업성이 우수한 핵심 입지의 조합들은 단순히 사업을 멈추는 대신, 시공사와의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적 쇄신에 나서고 있다. 조합 내부에 시공사의 원가 구조와 하도급 체계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를 배치함으로써, 시공사가 제시하는 증액 요구안의 허점을 짚어내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반론적 움직임은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된다. 건설사 출신을 자문위원이나 조합 임원으로 영입한 사업장의 경우, 설계 변경이나 마감재 조정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덜어내 초기 청구된 공사비 증액분의 약 15~20%를 삭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업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를 막기 위해 '내부자'를 고용해 협상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분당 재건축 단지 등 1기 신도시의 공사비 협상 전략은?

이러한 현상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이 본격화된 1기 신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선도지구로 지정된 단지들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나 공공기여 비율 등 도시계획의 세부 지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안고 있다. 지자체장이 교체될 경우 인허가 절차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 출신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는 시공사와의 도급계약서 독소조항 제거다. 물가 상승률 반영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치열한 협상에서 조합 측의 논리를 개발한다. 둘째는 인허가 관청과의 조율이다. 현직 단체장의 임기 내에 각종 심의를 통과시키기 위해, 행정청이 요구하는 공공기여 방안을 시공사의 설계에 신속히 반영해 속도전을 펼친다.

재건축 단지내 상가 쪼개기 방지와 갈등 관리

정비사업의 가장 큰 암초로 꼽히는 상가 조합원과의 갈등 해결에도 외부 전문가의 역량이 투입되고 있다. '재건축 단지내 상가 쪼개기'는 아파트 입주권을 노리고 상가 지분을 잘게 나누는 꼼수로, 조합 내분과 사업 지연의 주된 원인이다. 최근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제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 강화로 인해 사업이 조금만 지연되어도 조합의 자금줄이 마르는 구조다.

과거에는 조합장이 주먹구구식으로 상가 소유주들과 협상했다면, 이제는 영입된 전문가들이 개발이익 비례율을 정밀하게 산정해 상가 조합원들에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한다. 자재 수입 단가 변동이 상가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까지 시뮬레이션하여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차단하는 식이다.

'내부자' 영입의 맹점, 도덕적 해이 우려는 없을까?

물론 이러한 흐름에 대한 강력한 반론과 우려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가능성이다. 특정 대형 건설사 출신 인사가 조합의 실권을 쥐게 될 경우, 입찰 과정에서 자신의 친정 기업에 유리하도록 평가 기준을 조작하거나, 공사비 검증 과정에서 시공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사업장에서는 영입된 전문가의 편향성 문제로 조합원 간의 고소·고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조합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중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없는 다른 1군 건설사 출신을 영입하거나, 기본급을 낮추고 공사비 절감액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성과급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향후 시장의 가늠자: 하반기 본계약 체결률

건설사 출신 전문가 영입 트렌드가 실제 정비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는 향후 주요 단지들의 본계약 체결률을 통해 검증될 것이다. 서울 강남권과 주요 1기 신도시에서 시공사와의 공사비 증액 갈등을 봉합하고 실제 착공에 들어가는 단지의 비율이 증가한다면, 이는 정보 비대칭성 해소가 가져온 긍정적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부동산 신탁사들과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PM)들은 은퇴한 건설사 임원들을 대거 흡수해 조합에 파견하는 B2B 서비스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주요 매체들의 동향을 종합해보면, 향후 정비사업 시장은 아마추어 조합원들의 집단행동이 아닌, 철저한 숫자와 데이터 기반의 기업 간(B2B) 협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원자재발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변수가 맞물린 현재의 시장 상황은 재건축 조합들에게 전례 없는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막연히 금리가 인하되거나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단지와, 적극적으로 시장의 전문가를 활용해 리스크를 헤지하는 단지 간의 사업 속도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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